Baram


방 한 칸에서 할 수 있는 작업은 평면 회화뿐이었다. 하지만 나는 평면 회화를 한 번도 접해 보지 못했기에 여러 재료를 사용해 보고, 조금씩 터득해 나가는 방법밖에 없었다.


붓질에 익숙해지기 위해 매일같이 스케치북을 한 장씩 뜯어 아크릴 물감을 짜고 이곳저곳에 붓질을 했다. 그리고 칠해진 물감이 마르기도 전에 그 위에 다시 물감을 짜고 붓을 그었다. 그러자 서로 다른 색이 섞이고 번져 선이 생겼다. 그렇게 그려진 습작들은 바닥에 널브러진 채 방 전체를 채우고 있었고, 나는 그것들을 정리해야 했다. 그런데 어느 날, 비정형적인 형태가 그려진 습작들이 마치 바람의 형상처럼 보였다. 방에 흩어져 있던 습작지들을 모아 다시 캔버스 위에 불규칙하게 퍼뜨리자, 마치 바람 조각들이 실제 바람처럼 흩날리는 듯 보였고, 캔버스 안에서 불규칙한 구조를 이루었다.


비정형적인 형태가 그려진 습작들은 나에게 회화에 대한 불안이자, 불완전함이었다. 하지만 그 불안과 불완전함은 사각형의 캔버스 안에서 안정된 구조를 이루고 있었다. 사각형이 안정된 구조라는 것은 목공과 건설 현장의 경험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이전에 나는 작업자가 높은 곳에서 안전하게 발을 디디고 일할 수 있도록 비계라는 임시 구조물을 설치한 적이 있다. 비계는 사각형 형태의 적층 구조이며, 임시 구조물을 쌓는 데 가장 안전하면서도 기본적인 방식이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나는 사각형이 불안정한 상태를 지탱할 수 있는 가장 안정된 구조라고 여기게 되었다. 어쩌면 안정감이란 불안정을 없애서 얻는 상태가 아니라, 불안정한 것이 안정된 구조를 얻었을 때 생기는 상태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7년 동안 300점이 넘는 캔버스에 수천 개의 바람 조각을 불규칙하게 배열하며, 안정과 불안정을 공존시켰다. 수천 번의 반복된 작업 속에서도 동일한 배열과 동일한 바람 조각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오랜 반복 속에서 작업은 점점 안정된 체계를 갖추었고, 불규칙한 배열은 어느 순간 통제된 무질서처럼 느껴졌다. 나는 안정된 체계에 불안정한 요소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 검은색 수성 페인트를 제대로 밀폐하지 않아 원액이 말라가고 있었다. 농도를 다시 맞추기 위해 물을 첨가했지만 물의 양이 너무 많았다. 묽어진 원료를 칠하고 건조시켜 보니, 검정이라고 여겼던 색은 네이비 색상으로 나타났다. 묽어진 원료는 어떤 색으로 나타날지 확신할 수 없었고, 건조된 후에야 숨겨진 색이 옅게 드러났다. 그 불확실함은 나의 작업에 새로운 불안정을 가져다주었다. 다만 색은 어떠한 상징적 의미를 가지지 않는다. 형태, 배열과 함께 균형을 이루는 하나의 시각적 요소에 가까울 뿐이다.


묽어진 원료는 선의 선명도가 불확실하여 사각형을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구현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불규칙한 배열이 아닌 새로운 방식이 필요했다.


나는 바람의 흐름을 나타낼 수 있는 최소한의 형태를 생각하게 되었고, 그 형태는 곡선이었다. 묽어진 원료를 화면에 그어 버리는 것이다. 이 작업에서 색은 옅게 번지며 곡선 형태로 늘어졌다. 그것은 마치 화면 안에서 바람이 지나간 흔적을 남겨 둔 것처럼 보였다. 나는 또 다른 바람의 형태를 찾게 되었고, 지금은 사각형의 배열과 옅은 곡선이라는 두 가지 방식으로 작업한다.


Kiwa


목재소에 가서 제재목을 고를 때 늘 먼저 확인하는 부분이 있다. 제재목의 끝과 끝, 마구리면이다. 마구리면은 수분이 빠져나가는 통로이기 때문에 조립 시 접착력이 떨어지고, 갈라지거나 변형되기 쉬워 버려지는 부위이다. 이러한 마구리면은 다루기 어려워 구조적으로 감추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나는 버려지고 감춰지는 그 마구리면을 사용한다.


마구리면이란 나이테가 사각형으로 재단된 단면이다. 그 무늬는 나무가 어떻게 성장했는지를 나타내며, 자연이 새겨놓은 유일무이한 기록의 형태이다. 나는 그것이 버려지고 감춰지기에는 특별하고 아름다운 무늬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오랜 시간 마구리면을 들여다보니, 그 무늬는 마치 기와장들이 층층이 쌓여 기와지붕을 이룬 모습처럼 보였다. 기와장은 하나하나는 깨지기 쉽지만, 쌓이면 지붕이라는 단단한 구조가 된다. 이러한 성질은 마구리면도 동일했다. 마구리면 하나하나를 하나의 기와처럼 여기고, 그것들을 기와지붕처럼 적층하고 나열하여 하나의 완전한 형태로 나타내기로 했다.


여러 수종의 제재목을 수백 번 재단했고, 수백 개의 마구리면이 변형이 오는 것을 막기 위해 수많은 테스트를 했다. 그렇게 1년 반이라는 시행착오 끝에 완성된 작품이, 전시를 2주쯤 앞두고 겨울의 건조함으로 갈라지고 깨져버리는 일이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갈라지고 깨진 부분을 수정해야 했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나무의 자연 현상을 본연 그대로 받아들이고 드러냈다.


나는 마구리면의 불완전함을 감추기 위해 수많은 작업을 했지만 불완전함은 어떻게든 드러났다. 그리고 나는 이 경험을 통해서 생각이 달라졌다. 불완전함은 단순히 제거되거나 감춰져야 할 대상이 아니었다. 불완전함 또한 그 대상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성질이자 정체성이다. 완전한 형태란 결함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불완전함을 포함한 채 유지되는 구조일 수 있다는 생각과, 과연 결함 없는 완전한 형태가 존재하는가에 대해서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이후 나에게 중요한 것은 불완전한 것을 결함이 없는 상태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형태 안에서 불완전함을 제거하지 않은 채 구조 안에 남겨두는 것이었다.